9호선 고속터미널역은 서울 지하철 건설 역사상 손꼽히는 난공사 구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역을 건설하는 데 **TRcM (Tubular Roof Construction Method)**과 CAM (Cellular Arch Method) 공법이 세계 최초로 복합 적용되었습니다. 이 두 공법의 조합은 3호선 노선 하부와 지하상가 등 복잡한 도심 지하 환경에서 최소한의 지반 변위로 대단면 지하철 역사를 구축하기 위한 혁신적인 해결책이었습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난공사 배경
9호선 고속터미널역(913공구) 구간은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로 난공사로 분류되었습니다.
기존 지하 구조물과의 근접성: 이미 운행 중인 3호선 및 7호선 환승 구간이며, 특히 9호선 승강장이 3호선 바닥 구조물과 불과 15c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상태로 건설되어야 했습니다. 이는 극도의 정밀 시공을 요구했습니다.
복잡한 지상 환경: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신세계 백화점, 메리어트 호텔, 센트럴시티 등 대형 건물과 상가, 그리고 수많은 유동 인구가 밀집된 도심 한복판에 위치했습니다. 기존 상가 영업이나 지상 교통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어야 했습니다.
지반 조건: 연약지반이 포함된 토사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대규모 지하 터널 축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개착식이나 일반적인 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 방식으로는 시공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1. TRcM (Tubular Roof Construction Method) 공법: 선행 지붕 구조물 형성
일반적인 특징 및 활용 사례: TRcM 공법은 '관형 지붕 구축 공법'이라고 불립니다. 이 공법의 핵심은 지하 공간을 굴착하기 전에 터널이나 지하 구조물의 '지붕' 역할을 할 강성 구조물(루프)을 먼저 지반 내에 형성하는 것입니다. 주로 기존 구조물과의 간섭이 심하거나, 지반 변위에 민감한 도심지 대단면 지하 구조물 건설에 사용됩니다.
원리:
지하에 작업구를 설치합니다.
이 작업구를 통해 여러 개의 대구경 강관(주로 원형)을 유압잭 등을 이용하여 지반 속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평하게 압입합니다. 이 강관들은 터널 상부의 지붕 구조물을 형성할 기초가 됩니다.
압입된 강관 내부에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를 채워 넣어 강관-콘크리트 복합 구조체를 만듭니다.
이렇게 완성된 강관 구조물들을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견고한 지붕 형태를 이룹니다.
이후 이 지붕 구조물 아래에서 안전하게 내부 굴착을 진행합니다.
주요 장점:
지반 변위 최소화: 굴착 전에 지붕을 미리 형성하여 상부 지반의 침하를 거의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이는 인접한 건물이나 기존 지하 시설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결정적입니다.
안전성 확보: 선행적으로 지지 구조물을 구축하므로 굴착 중 발생할 수 있는 붕괴 위험이 현저히 낮아집니다.
도심지 적용 용이: 지상 굴착을 최소화하고 지하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므로 교통 흐름이나 지상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의 구체적인 적용: 고속터미널역에서는 CAM 공법으로 형성될 역사의 상부 구조물(아치)을 지지하고, 특히 3호선 노선 바로 아래라는 초근접 환경에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TRcM이 선행되었습니다.
역사 주변 지하 4곳에 TRcM 공법을 위한 작은 작업구를 설치했습니다.
이 작업구를 통해 직경 2.5m의 갤러리관 2개를 먼저 지반에 압입했습니다.
이 갤러리관 내부를 통해 다시 직각 방향으로 직경 1.5m의 슬래브관 다수를 수평하게 압입했습니다. 이 슬래브관들이 9호선 역사의 폭을 따라 지붕 형태를 이루게 됩니다.
슬래브관 내부에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강성을 극대화한 견고한 상부 지지 구조물을 완성했습니다. 이 TRcM 구조물은 마치 터널 위를 덮는 거대한 '그물망' 또는 '지지대' 역할을 하여, 아래에서 진행될 CAM 공법 굴착 시 지반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2. CAM (Cellular Arch Method) 공법: 대단면 아치 구조물 구축
일반적인 특징 및 활용 사례: CAM 공법은 '셀룰러 아치 공법' 또는 '유한요소식 지붕 구조물 공법'이라고 불립니다. 이 공법은 특히 매우 넓은 단면의 터널이나 지하 공간을 비개착(땅을 파지 않고) 방식으로 건설할 때 효율적입니다. 여러 개의 강관을 아치형으로 배열하여 강력한 지지 구조를 만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원리:
TRcM과 유사하게, 여러 개의 대구경 강관을 아치 형태(반원형 또는 유사 아치형)로 지반 속에 압입합니다.
압입된 각 강관들을 서로 연결하는 보강재(거더 등)를 설치하고, 강관 내외부에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일체화된 아치형 복합 구조물(셀룰러 아치)을 만듭니다.
이 견고한 아치 구조물 아래에서 안전하게 내부 굴착을 진행하여 넓은 지하 공간을 확보합니다.
주요 장점:
대단면 시공의 용이성: 일반적인 NATM 방식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매우 넓은 폭의 지하 공간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습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 승강장의 폭은 약 21m에 달합니다.
지반 안정성 극대화: 아치형 구조가 상부 지반의 하중을 효과적으로 분산시켜 안정성을 극대화합니다.
도심지 공사 적합: TRcM과 마찬가지로 지상 굴착을 최소화하고 지하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져 도심지 공사에 이상적입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의 구체적인 적용: TRcM 공법으로 만들어진 상부 지지 구조물 아래에서, 9호선 고속터미널역의 넓은 승강장 공간을 만들기 위해 CAM 공법이 적용되었습니다.
TRcM 구조물 하부에, 직경 2m의 강관 13개를 아치 형태로 배열하여 지반에 밀어 넣었습니다. 이 강관들이 9호선 승강장의 천장 역할을 할 아치 구조물의 뼈대가 됩니다.
이 강관들을 서로 연결하는 강력한 거더(보)를 설치하고, 강관과 거더가 일체화되도록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매우 견고한 아치형 천장 구조물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3호선 바닥 구조물과의 간격이 단 15cm라는 초정밀 시공이 요구되었습니다.
아치형 천장 구조물이 완성된 후, 그 아래 공간을 순차적으로 굴착해 나갔습니다. 이 굴착은 TRcM 구조물과 CAM 아치 구조물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굴착을 완료한 후, 역사 바닥 슬래브와 내부 벽체 등을 설치하여 최종적으로 넓고 안정적인 박스형 지하철 역사를 구축했습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 시공의 기술적 의의
9호선 고속터미널역은 TRcM과 CAM 공법을 세계 최초로 복합 적용하여, 다음과 같은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무사고 완공: 3호선 하부 15cm라는 극한의 난이도 구간을 기존 시설물에 어떠한 피해나 지반 변위 없이 완벽하게 완공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기술적 쾌거로 평가받습니다.
국제적 인정: 이러한 혁신적인 시공 능력으로 쌍용건설은 2009년 대한토목학회 '올해의 토목 구조물' 대상뿐만 아니라, 토목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영국 토목학회(ICE)의 '브루넬 메달(Brunel Medal)'**을 수상했습니다.
도심지 대단면 지하 구조물 건설의 새로운 표준 제시: 9호선 고속터미널역 사례는 향후 도심지에서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대단면 지하 공간을 건설할 때 적용될 수 있는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이처럼 9호선 고속터미널역은 단순히 지하철 역사를 넘어, 현대 토목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참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