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이해찬
2026. 1. 31. 00:47ㆍ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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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은 학생운동 출신으로 시작해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낸 7선 거물 정치인이며, 민주당계 ‘선거 전략가’이자 ‘킹메이커’로 불린 인물입니다.

기본 프로필·경력
- 1952년 7월 10일 충남 청양 출생, 용산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1970년대 학생운동·민주화 운동 참여, ‘돌베개’ 출판사 대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간부로 활동.
-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로 첫 국회의원 당선 이후, 총 7선(관악을, 세종시 등) 기록.
- 김대중 정부 교육부 장관(1998~1999),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2004~2006), 문재인 정부 때 더불어민주당 대표(2018~2020)를 역임.
- 2026년 1월 베트남 출장 중 별세(향년 73세).
정치적 스타일과 평가
- 장점으로 평가된 점
- 추진력 강하고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 선거 전략·정책 기획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
- 1995년 조순 서울시장 캠프 총괄, 2016·2020 총선 전략 설계 등으로 ‘선거의 제왕’, ‘킹메이커’라는 별칭.
-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민주당계 네 대통령 모두와 깊이 연관된 핵심 전략가로 꼽힘.
- 비판·논란
- 고집이 세고 포용력이 부족해 ‘협상가’보다는 ‘기획자·전략가’형이라는 지적.
- 당 대표 시절 잦은 말실수(장애인 비하 논란 등)로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음.
주요 비하인드 스토리·에피소드
- ‘친노 좌장’과 책임총리 이미지
- 노무현 대통령이 신뢰하는 핵심 참모로, 총리 재직 시 청와대와 긴밀히 소통하며 국정 전반을 사실상 총괄해 ‘실세 총리’, ‘책임총리’의 상징으로 불렸습니다.
- 선거 전략가·킹메이커 비화
-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조순 후보 서울시장 캠프의 전략을 설계해 승리를 이끌며 선거 기획 능력이 주목받음.
- 이후 민주당계 대선·총선에서 전략 총괄을 맡으며, 당내에 “선거는 이해찬이 설계해야 이긴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증언 다수.
- 공천 원칙으로 붙은 별명 ‘미스터 퍼블릭’
- 당 대표 시절, 측근이라도 여론·경쟁력이 낮으면 단수공천을 주지 않는 원칙 때문에 “자기 사람도 봐주지 않는다”며 ‘미스터 퍼블릭(Mr. Public)’이라고 불렸다는 회고가 있습니다.
- 통일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마지막 공직으로 맡은 것도 “경색된 남북관계 복원을 마지막 소임”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주변인의 증언.
- 당 대표 퇴임 때도 가장 아쉬운 점으로 “교착된 남북관계”를 꼽을 만큼, 통일·남북문제를 평생 화두로 삼았던 인물로 회고됩니다.
- 이재명 ‘멘토’ 논쟁
- 20대 국회 세종시 의원 이후, 이재명 대통령(당시 대선 후보)의 정치적 멘토 또는 ‘후견인’으로 거론되며 선거 전략·조언을 했다는 평가가 있음.
- 공식 직함 없이도 선거·공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은 지지층·비판층 모두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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