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풀이 눕는다’
2026. 1. 27. 00:10ㆍ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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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의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는 실패한 젊은 여성 소설가 ‘나’와 무명 화가 ‘풀’의 파국적 사랑을 통해, 2000년대 서울의 청춘·가난·자기파괴적 욕망을 날것 그대로 드러낸 작품이다. 제목은 김수영의 시 「풀」을 연상시키지만, 여기서 ‘풀이 눕는다’는 것은 결국 주인공의 삶과 의지가 무너져 내려가는 상태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많다.

작품 기본 정보
- 작가: 김사과 (1984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졸업).
- 발표: 2008년 계간 「창작과비평」 연재를 거쳐 단행본(문학동네)으로 출간.
- 장르·성격: 젊은 예술가의 정신적 성장기를 가장한, 자기파괴와 극단적 사랑, 가난과 루저 정체성을 다룬 청춘 소설.
- 작가 위치: 데뷔작 「미나」에 이어, 파격적 소재·실험적 문체로 2000년대 한국 문단에 ‘세대의 균열’을 낸 작가로 논의된다.
줄거리와 인물
- 화자 ‘나’:
- 대학 시절 등단했지만 이후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우울증·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실패한 소설가.
- 돈도, 사회적 역할도, 가족과의 관계도 모두 어정쩡한 상태로,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인물이다.
- ‘풀’:
- 공고 출신의 무명 화가로, 작은아버지 공장에서 일용직처럼 일하며 시급 이상을 받기도 하지만, 안정된 직업이나 커리어는 없다.
- 구부정한 등, 끝까지 걸어가는 특이한 걸음걸이로 인해 ‘나’에게 이상한 슬픔과 매혹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풀’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 관계의 전개:
- ‘나’는 길에서 처음 만난 그를 무작정 따라가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둘은 곧바로 동거를 시작한다.
- 둘은 8만 원짜리 옥탑방을 얻고, 옆 창고를 빌려 화실을 만들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술을 마시며 세상과 단절된 채 ‘둘만의 사랑’을 절대적인 진실처럼 믿는다.
- 그러나 ‘나’의 알코올 중독, 극단적인 독점 욕구, 현실 감각의 결여로 관계는 조금씩 균열을 드러낸다.
- 풀의 그림이 공모전에 입상하고, 그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이를 배신처럼 느끼며 난동을 부리고, 결국 사랑은 파국과 죽음을 향해 미끄러져 간다.

주요 주제와 의미
- 가난과 청춘, ‘루저’ 정체성:
- 작품 속 인물들은 “돈을 벌지 않고도 사랑과 가난, 불확실성만이 삶의 진실이라고 믿는” 존재들로, 사회의 성공 규범과 철저히 어긋난다.
- 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인간쓰레기’에 가깝지만, 소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순수, 열망, 사랑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 사랑과 집착, 자기파괴:
- ‘나’는 풀을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친구에게조차 그를 허용하지 않고, 풀의 사회적 가능성(전시·입상 등)을 오히려 파괴하려 한다.
- 이 사랑은 상호 성장이나 상호 지지를 지향하기보다, “함께 아름답게 굶어 죽겠다”는 식의 자기파괴적 연대에 가깝다.
- 다른 세계의 욕망과 그 한계:
- 인물들은 안정된 직장·가족·제도적 안전망 같은 “안정된 삶의 장치”를 제거하면서, 그 빈자리에서 ‘진짜 삶’과 사랑의 형식을 찾으려 한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 그러나 이런 이상주의적 공동체는 결국 “빈곤에 도착”할 수밖에 없으며, 생존과의 투쟁 앞에서 무너진다.
- 제목 ‘풀이 눕는다’의 의미:
- 표면적으로는 김수영 시 「풀」의 유명한 첫 구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소설은 그 시의 ‘꺾여도 다시 일어나는 풀’ 이미지와 다르게, 눕고 무너지는 삶, 그리고 다시 일어날 수 없는 파국의 정조를 강하게 드러낸다는 독법이 많다.
- 어떤 평자들은 “김사과의 ‘풀’은 사실상 ‘나’의 삶이 눕는 것”이라고 해석하며, 시대와 사회에 짓눌린 청춘 세대의 좌절을 상징적 이미지로 읽는다.

문체와 비평적 평가
- 문체·구성 특징:
-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며, 감정의 격랑·우울·술기운이 뒤섞인 듯한 거친 문장과 반복, 의식의 흐름에 가까운 서술이 돋보인다.
- 히피 문학이나 1960년대 반체제·청년 문학을 2000년대 서울에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라는 평가가 있다.
- 성매매, 낙태, 폭력, 가족 해체 등 보기 불편한 소재들이 전면에 등장해, 독자에게 불쾌함과 동시에 강한 현실 인식을 요구하는 텍스트로 언급된다.
- 비평·평단의 반응:
-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이 소설을 “인간쓰레기를 위한 메시아주의”라고 부르며,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난 이들에게서 새로운 윤리·사랑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으로 평가했다.
- 전통적인 ‘성장소설’이라기보다는, 성장의 실패·성숙의 불가능성을 통해 동시대 청년 현실을 드러내는 반(反)성장 서사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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